헬레니즘 천문학
에우독소스 구조는 몇 가지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정확하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칼리푸스의 연구는 이 결점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문제는 행성의 속도가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그의 모형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결함은 지구에서 볼 때 행성의 밝기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심이 같은 구체이기 때문에 행성은 항상 지구에서 같은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전에 아우톨리코스가 지적하였다.
아폴로니오스(262 BC~190 BC)는 행성의 거리와 속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두 개의 새로운 메커니즘(편심종원(eccentric deferent), 종원(deferent)과 주전원(epicycle))을 도입하여 대응하였다. '종원'은 지구 주위의 행성을 운반하는 원이다. (deferent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옮기다’를 뜻하는 ferro, ferre에서 유래되었다.) 편심종원은 중심이 지구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종원과 주전원 모형에서 종원은 행성을 운반하는 작은 원인 주전원을 운반한다. 아폴로니오스의 정리가 보여주듯이 종원과 주전원 모형은 편심 모형을 흉내낼 수 있다. 또한 행성이 짧은 시간에 황도를 통과하여 행성이 반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 생기는 역행을 설명할 수 있다. 현대 천문학 역사가들은 에우독소스의 모형이 전혀 그렇지 못한 모형들과 다르게 일부 행성들의 역행을 대략 가깝게 계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기원전 2세기,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이 행성 움직임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히파르코스는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유사한 수준의 정확성을 달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여하튼 그는 바빌론 사람들의 관측 또는 예측에 대해 접근했고, 그것을 이용하여 더 나은 기하학적 모형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였다. 태양에 대하여, 그는 춘분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태양의 속도와 계절 길이의 차이의 변화에 대해 설명한 간단한 편심 모형을 사용하였다. 달에 대하여, 그는 종원과 주전원 모형을 사용하였다. 그는 나머지 행성에 대한 정확한 모형을 만들 수 없었고, 부정확한 모델을 만든 다른 그리스 천문학자들을 비판할 수 없었다.
히파르코스는 성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에 따르면, 그는 초신성(새로운 별)을 관찰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들이 다른 별들이 죽고, 이동하거나 밝기가 변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도록, 별의 위치와 밝기를 기록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히파르코스의 세차 운동 발견과 관련하여 그 표를 언급하였다.(춘분 때의 세차는 지구의 축 이동에 의해 야기되는 황도를 통과하는 춘분 별자리들의 느리게 이동하는 것이다). 히파르코스는 이것이 항성 구의 움직임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
태양 중심설과 우주의 크기
BC 3세기에 아리스타르코스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아닌, 태양을 가운데 놓는 태양계의 태양 중심 모형인 다른 우주론을 제안하였다.(따라서 그는 '그리스의 코페르니쿠스'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천문학적 견해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일부 참조만 되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추종자는 셀레우쿠스 한 명만이 전해져 내려온다.
아리스타르코스는 그의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연구인 "태양과 달의 크기와 그 거리"(the Sizes and Distances of the Sun and Moon)를 썼다. 이 저술에서 그는 지구 반경의 지구부터 태양과 달까지의 거리뿐만 아니라 태양과 달의 크기까지 계산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라토스테네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계산에서 도출할 수 있는 지구 반지름 값을 제공하여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였다. 히파르코스는 태양과 달의 거리와 크기에 대한 또 다른 동명의 책을 썼지만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아리스타르코스와 히파르코스는 모두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과소 측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