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들
에우독소스
그리스 시대의 에우독소스(Eudoxos, 400?~350?B.C.)는 동심천구설을 주장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지구를 중심으로 한 27개의 천구들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다. 실제 천체의 회전궤도는 원형이 아니며 그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에우독소스의 가설은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채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B.C.)는 우주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두고, 달을 기준으로 지구와 가까운 공간을 '지상계', 달 윗 공간을 '천상계'로 말이다. 그에 따르면 두 세계는 각각을 이루는 물질부터 다른데, 지상계는 흔히 볼 수 있듯 불, 물, 흙, 공기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천상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로 차있다. 두 세계에서 일어나는 운동도 차이가 난다. 아직 지구가 원형이라는 확실한 인식이 없을 적,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계에서 일어나는 운동은 직선운동이 주를 이루고, 천상계에 있는 천체들은 등속원운동을 한다고 믿었다.
아리스타르코스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310?~230B.C.)의 유일한 저서는 『태양 및 달의 크기와 거리에 대해서』이다. 그는 별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고 주장했으며, 한 별이 다른 별 주위를 도는 것과 같은 특정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별이 너무 멀리 있어서 육안으로는 관찰하기가 힘들고 망원경을 통해서만 증명이 가능했다. 따라서 대중 사이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삼각법을 이용하여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의 18~20배라고 하였다. (실제로는 약 400배이다.) 또 그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사용한 방법을 사용하여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고 달과 태양에 대해서도 탐구하여 태양의 겉넓이와 부피를 알아내기도 하였다.
히파르코스
히파르코스(Hipparchos, 190?~120?B.C.)는 사실은 천체의 회전 궤도가 정확한 원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오차를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을 도입하고 회전속도가 변하는 것은 이심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중심설은 현재의 태양계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구조와 거의 비슷하고 단지 우주의 중심에 있던 지구와 달의 위치를 태양과 바꾸어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오게 하였다. 원형 궤도와 주전원, 이심 등의 기존의 지구 중심적 구조는 그대로 차용하였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체계화된 태양계의 구조설을 코페르니쿠스 체계(Copernican system)라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모델은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을 해소해 주었다.
첫 번째는 행성들의 배열순서와 그것들의 주기에 관한 문제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 주위를 도는 행성들을 회전주기가 짧은 순서대로 지구와 가깝게 배치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태양과 금성, 수성의 회전주기가 약 1년 정도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 셋의 순서를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 문제는 공전의 중심 자체가 바뀌어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태양을 중심에 두는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행성들의 역행 운동에 대한 문제였다. 지구중심설로서 이를 설명하려면 주전원과 등속 중심 등을 사용하여 매우 복잡했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체계에서는 우주구조 자체로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의 전체 골격은 그대로 두고 세부만 바꾼 변혁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천구는 그대로 존재했고, 행성과 지구는 여전히 이 천구들에 고정되어 돌도록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원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그대로 고수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가장 자연스러운 운동은 등속원운동이라고 생각하여 그에 맞지 부합하지 않는 관측 데이터에 맞추기 위해 주전원, 이심 등을 그대로 도입하였다.